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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8 읽음 2015-03-11 12:02:29

섬진강에서 도깨비에 홀리다.

 한국일보

■ 섬진강에서 도깨비에 홀리다.



심청의 고향은 어디일까? 증기열차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강 건너 산자락에 2개의 의아스러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먼저 ‘심청 곡성’, 키 작은 조경수로 원안에 쓴 글씨는 위성지도에서도 보일 만큼 선명하다. 심청과 곡성이 무슨 상관이냐고? 오산면 관음사의 창건 설화가 심청전의 모태(일 수도 있다)라는 것이 곡성군의 주장이다. 그럼 인당수는? 당연히 없다. 어차피 소설 속 이야기다. 심청의 효(孝) 의식을 계승하고 관광상품화 하겠다고 먼저 나선 것뿐이다. 이미 효 체험과 숙박을 겸하는 ‘심청효문화센터’가 관음사 인근 마을에 운영 중이고, 오곡면 송정리에는 한옥펜션 ‘심청한옥마을’이 만들어졌다. 심청이 어떻게 곡성 땅에 자리잡을 지는 앞으로 더 지켜볼 일이다.

‘심청곡성’에서 조금 더 하류로 내려가면 소나무 숲 언덕에‘도깨비마을’이라는 간판과 커다란 도깨비상이 눈에 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고달면 호곡리다. 마을 이름으로 봐서는 호랑이 전설이 어울릴 것 같은데 도깨비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조선 초기 태종 이방원의 총애를 받은 마천목(馬天牧, 1358~1431) 장군이 장흥에서 호곡리 섬진강가로 이주해 부모님을 모시던 때의 이야기다. 물고기를 잡을 어살 (고기를 잡기 위한 발)을 설치하려고 주워온 돌이 하필 도깨비 대장이었다. 대장을 돌려주면 어살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도깨비들이 하룻밤 사이에 섬진강에 어살을 완성했단다.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도깨비살’로 불리고 있다.

도깨비마을은 도깨비살이 내려다 보이는 바로 위 숲 속에 자리잡고 있다. 혹부리영감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 도깨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도깨비 뿔은 몇 개일까? 도깨비 방망이 이름은? 소나무 숲을 따라난 오솔길로 발길을 옮길 때마다 도깨비 같은 물음이 적힌 팻말이 나타난다. 피식 웃고 지나도 될 것을,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게 아는 게 없으니 괜히 심술이 난다. 숲길 양편 곳곳에 눈길 닿는 곳마다 도깨비 상이다. 제멋대로 생긴 놈들이 낄낄거리며 비웃는 듯해 더욱 약이 오른다. 정답과 또 다른 질문이 적혀있는 다음 팻말을 찾아 저절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정도면 도깨비에 홀린 게 틀림없다.

마지막 질문은 ‘도깨비가 나타나 돈을 빌려 달라고 한다면?’이다. 힌트는 숲길 끝 도깨비전시관 앞 ‘닷냥이’동상에 있다. 엉덩이를 무질러 앉은 폼이 딱 이렇다. ‘궁금해? 궁금하면 5,000원!’ 해설사를 동행한 도깨비 숲길 산책과 전시관에서 열리는 인형극‘책이 꼼지락 꼼지락’관람료를 포함한 요금이다.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하는 도깨비마을 김성범(53) 촌장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회계사 출신으로 2001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한 이력을 가진 그는 “도깨비가 나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어느 날 공원을 산책하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도깨비 조각이 시작이었다. 이후 도깨비를 주제로 한 동화와 조각 등의 작업에 매진하기 위해 3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다 터를 잡은 곳이 이곳이다. 도깨비살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2003년 도깨비마을 입구에 머리에 뿔 하나 달고 울퉁불퉁 도깨비방망이를 든 석상을 세웠는데 항의가 빗발쳤다. 왜 일본 도깨비를 세웠느냐는 게 주된 이유였다. 나름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림을 참고해서 만든 것이었는데 억울했다. 그럼 우리 도깨비는 어떻게 생겼을까? 역사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글로는 남은 게 없고, 그가 주목한 것은 기와와 벽돌 탑신 등에 새겨진 그림이었다. 그렇게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배달국(중국에서는 구려국으로 동북공정을 통해 고대사로 복원하고 있다)의 14대왕 치우천왕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뿔이 둘 달린 청동 투구를 쓴 모습이다. 축구 국가대표 응원단‘붉은 악마’의 상징으로 익숙한 백제도깨비는 보물 제343호 부여 외리 백제 문양전(文樣塼) 벽돌에서 따왔다. 마을 입구에 다시 세운 도깨비 석상은 국보 제10호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에 새겨진 도끼를 든 도깨비다. 전시실을 비롯해 도깨비 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조각상만 1,000여 개다. 역사적으로 고증된 거냐고? 아직까지는 도깨비마을 촌장의 주장이다. 이런 작업이 도깨비 연구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도깨비가 조상이 물려준 최고의 콘텐츠라고 강조한다. 춤과 노래 좋아하고, 금은보화 이야기 많고, 손때 묻은 물건으로 변신하는 도깨비의 속성이 축제와 환경문제 등 현대사회의 가치와 아주 잘 들어맞는다고 자부한다. 동화 속에 숨어 지내던 도깨비가 김성범 촌장을 매개로 섬진강 도깨비마을에서 부활하고 있다.

봄이 오면 도깨비마을 숲길엔 생태이야기가 보태진다. 아련히 잊혀지는 도깨비 이야기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흥미를 끌기에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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