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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3 읽음 2015-03-11 12:34:42

천년고찰의 소박한 저력 태안사.

 한국일보

■ 천년고찰의 소박한 저력 태안사.



가정역에서 섬진강을 따라 구례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오곡면 압록마을이다. 압록에서 약 12km 떨어진 죽곡면 동리산 자락엔 구산선문 천년고찰 태안사가 자리잡고 있다. 명성과 달리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화려’와 ‘웅장’을 뽐내며 위압감을 주는 불사도 없다.

대부분 사찰은 일주문이 시작이지만 태안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은 능파각이다. 계곡 양편의 바위를 연결해 교량과 산문(山門), 누각을 겸하는 모양새다. 주위 경관과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다워 능파(凌波)라 이름 붙였다. 능파는 물결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닌다는 뜻으로, 미인의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다. 다리를 건너면 ‘세속의 번뇌를 버리고 성스러운 불국토(佛國土)로 들어가는 의미’라고 해석한 안내문이 어쩐지 머쓱하다. 능파각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200m쯤 오르면 그제야 일주문이다. 작지만 짜임새 있는 다포식 건물 뒤로 편백과 삼나무 전나무가 어우러진 자리에 부도 밭이 자리잡고 있다. 태안사를 중창해 크게 빛낸 광자대사탑(보물 제274호)과 탑비(보물 제275호)를 비롯해 여러 부도가 대숲을 배경으로 아늑하다. 절의 맨 꼭대기 배알문을 지나면 태안사를 창건한 혜철 스님의 사리를 모신 적인선사탑(보물 제273호)이다. 가치를 평가할 재간이 없는 범인의 눈으로는 바로 옆 귀부(龜趺)에 더 눈길이 간다. 왼발은 땅에 붙이고 오른발가락은 살짝 들어올린 모양이 거북이 기어가듯 생동감 넘친다.



넓지 않은 절간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절터를 담고도 남을 법한 타원형 연못이 평온함을 더한다. 한때는 실상사와 송광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번창했다가 지금은 오히려 실상사의 말사가 돼버렸지만 입구에서부터 약 2km에 달하는 비포장도로 숲길은 천년고찰의 저력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곡성군에서 포장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태안사에서 거절했단다. 절간 앞마당까지 포장도로를 개설한 사찰이 수두룩하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불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되돌아 보게 한다. 양편으로 울창한 수림을 자랑하는 숲길엔 가끔씩 동안거(冬安居) 수행 중인 구도자들이 오갈 뿐 물소리 바람소리만 가득하다. 자동차도 다닐 만큼 평탄하지만 울창한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이 길은 걸어야 제 맛이겠다.



태안사에서 압록으로 되돌아 나오는 도로는 보성강을 끼고 휘돈다. 강 따라 달리다 보면 이곳이 왜 죽곡면인지 실감할 수 있다. 습지에는 갈대와 버드나무 숲이 보통이지만 보성강은 곳곳에 대나무 숲이 푸른빛을 수놓는다. 그래서 강물도 한결 녹색에 가깝다. 남에서 동북으로 거슬러 내려온 보성강과 북에서 동남으로 흐르는 섬진강이 만나는 곳이 압록이다. 합록(合綠)으로 부르다 물고기가 많아 철새들이 날아 드는 것을 보고 압록(鴨綠)으로 개명한 곳이다. 녹색인 듯 맑고 푸른 섬진강 물빛은 이미 압록에서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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